한 중국 성도의 반성 약 이백년 전 어떤 사람은 중국이 깊이 잠들어 있는 사자라고 말했습니다. 백여년전 어떤 사람은 임칙서가 중국에서 제일 처음으로 눈을 뜨고 세계를 본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스'가 창궐하고 있는 요즈음에 나는 묻고 싶습니다. 과연 오늘의 중국은 완전히 깨어났는가? 아니면 그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지 않은 세상은 외면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사스'가 중국에 어떠한 깨달음과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판단해 보아야 하고, 또 무엇이 올바른 각성이며 무엇이 온전한 시각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운 깨달음을 준 사스 중국이 깊이 잠들어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깨어남'이란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5․4운동시기에 ‘마비상태’라는 단어였습니다. 중국의 지식인들 자이에 자주 등장하던 말 가운데 하나는 개혁개방 후 등소평은 중국의 교육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제시하였습니다.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아예 얼굴을 가리고 보지 않거나, 보여도 보려고 하질 않았습니다. 정부가 여러 차례 거듭하여 국민들에게 '해방사상'과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전진'을 독려하곤 했지만 국민들은 괜히 앞에 나서다가 '머리 내민 새가 총에 맞았던' 예전의 비통했던 그 기억 때문에 아직도 목을 움츠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또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을 찾아보려는 원동력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발전 혹은 사람들의 단계적인 필요라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는 아직까지도 계속 미친 듯이 물질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농촌에서 벌어진다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농민의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와 생존은 아직까지도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비교적 부유하게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지식계층을 포함하여)까지도 지나칠 정도로 자동차나 부동산의 뒤를 좇으면서 반면 마음의 공허함과 갈증에 대해서는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막강한 경제적 재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정신적 재생산이라는 큰 건물을 지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사스'가 없었다면 우리는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 물질적인 발전에 도취한 나머지 우리들의 부족한 부분과 취약한 점, 무지와 편협된 사고, 정신적인 마비상태와 근시안에 대해서는 전혀 돌아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스'는 우리가 어떻게 반성하고 또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할지, 우리들의 어느 부분이 모자라고 어디에 상처가 있는지 돌아보도록 해주었습니다. 문제는 신앙의 결심 우리는 '사스때문에 나타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필자의 관찰에 따르면 '사스'가 가져온 심리상태와 행동양식에는 적극적인 면과 소극적인 면이 있습니다. 소극적인 심리상태로는 공포감, 초조함, 무력감, 신경질 등이 있으며 소극적 행동양식에는 실직, 도피, 미신활동과 비난 등이 있습니다. 적극적인 면에는 사랑과 반성 및 여기에 상응하는 기도와 봉사활동 등이 있습니다. 소극적 반응을 본 사람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왜 '사스'와 직면한 사람들의 마음이 이렇게 나약한가? 왜 이처럼 맹목적인 행동을 하는가? 필자는 그것은 우리에게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이라는 자양분이 결핍됨으로 인하여 심령이 약해지고 작은 공격에도 금새 무너지는 것입니다. 공포감과 초조함과 무력감, 그리고 또 다른 부정적인 심리적 반응들은 모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며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커지게 된 결과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영에 속한 삶을 살지 않는 것이고, 문화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정신생활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두 말은 같은 말입니다. 왜냐면, '靈'과 '정신'은 모두 'spirit'으로 번역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교육이 발달하는데 왜 우리의 정신생활이 여전히 뒤떨어져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사스'에 직면해서 왜 어떤 사람들은 직장을 잃고, 왜 어떤 사람들은 황량한 곳으로 도피하며, 왜 미신을 좇고, 왜 서로 비난하는 것일까요. 이런 모든 행동의 근원을 끝까지 파헤쳐 본다면 역시 우리의 신앙의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점으로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앙이란 정치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사회의 소수 엘리트들에게 적합한 신앙도 아닙니다. 보편적인 의미를 갖는 신앙, 즉 모든 사람과 모든 삶의 방식에 적용되는 그러한 신앙, 기독교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의 신분과 지위, 가치를 찾지 못하고 어떤 사람들은 높은 지위만을 추구하여 다른 이의 생명을 해치는 일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에 죽음과 삶을 이해하지 못해 어떤 사람들은 자기 일신의 안전만을 도모하고 다른 사람들의 죽음과 삶에 대해서는 돌아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사람이 한 지체임을 보지 못하고 당황한 나머지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사스 지역에서 도망가게 되고 그러한 행동의 결과적으로 그 결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위험을 꺼리게 될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에 유한한 과학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보지 못하여 각종 미신 행위로 마음의 무력감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문제의 근원을 찾아내려 하며, 하나님께, 이 질병의 피해자들을 위한 참회의 기도를 드리지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가지게 되는 내면적인 참회가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책망하기만 하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상처는 많아지고 어려움을 나누려는 마음은 적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적은 바로 죄성 이제 '사스'가 우리에게 가져온 긍정적인 영향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사랑이 많아졌습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가 좀 더 가깝게 당겨졌습니다. 정책적으로 무신론을 주장하는 나라에서 사람들이 기도하는 마음의 소리가 텔레비전과 같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많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언론제도와 정치 행정제도의 투명성도 한층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충분한 것일까요? 위기는 단순히 '사스' 그 자체만은 아닙니다. 우리들은 아직도 우리의 진정한 적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진정한 구속자 되심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의료진들과 환자와 사회를 위해서 기도한다고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도하는 사람 자신이나 기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누구에게 기도를 드리는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기도가 과연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더욱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도가 과연 기도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만일 우리가 계속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다면 '사스' 이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죄를 짓는 그러한 생활 속으로 매우 신속하게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사스' 기간에 보았던 아름다웠던 일들 때문에 이 날들을 추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스' 후 우리는 또다시 원래의 생활 궤도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속하심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다른 삶이 있다는 것, 더 좋은 삶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또한 '사스'라는 비상시기에 나타났던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할 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 '사스'가 가혹하게 몰아닥쳤던 상황 속에서 우리는 거듭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잠자는 사자라고 불리는 우리 중화민족이 정말로 깨어났는가? 모든 중국인의 눈이 뜨여졌는가? 만일 자신의 죄성이 이 사회에 가져다줄 악한 영향을 깨닫지 못하고 '사스'의 심층적 원인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리고 만일 하나님의 구속이 우리들에게 고귀한 신분과 아름답고 선한 생활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것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한 시시각각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사스'가 각 사람들에게 더욱 풍부하고 깊은 깨달음과 시각을 가져다 주기를 소원합니다. 각 사람이 물질적인 번영을 추구하는 동시에 심령의 강건함을 추구하는 것도 잊지 않기를 기도드립니다. 시대의 요구에 발맞추어 전진하고자 하는 중국의 지도자들이 기독교 신앙이 없기 때문에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깨닿고 중국민족이 모두 또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갈 때 중국에게 부어질 축복을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출처 : www. ccfellow.org 번역 : 김경아ㅁ |